“데이터 리터러시는 누구에게 필요할까요? (Who Needs Data Literacy?)” (David Buckingham, 2022.4.21.)

* 아래 글은 미디어 교육학자 David Buckingham 교수의 블로그에 게재된 Learning to Live with Datafication: Educational Case Studies and Initiatives Across the World (edited by Luci Pangrazio & Julian Sefton-Green, Routledge, 2022)(아래 표지)에 대한 서평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버킹엄 교수의 글은 데이터화 사회의 문제에 대해 국가의 규제와 미디어 교육이 모두 필요함을 강조하며, 서평 대상인 책에서 다룬 주요 쟁점과 그 의미 및 후속 과제를 짚고 있습니다. 데이터화 사회에 대한 비판적 미디어 교육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Lnk: https://www.routledge.com/Learning-to-Live-with-Datafication-Educational-Case-Studies-and-Initiatives/Pangrazio-Sefton-Green/p/book/9780367683078

‘데이터 리터러시’는 현대 생활의 데이터화, 특히 교육 자체에 대한 유용한 대응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데이터화에 대한 개념 정의 방법뿐 아니라 실제로 구현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리터러시’에는 많은 버전들이 있는데, 이는 종종 사회 정책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답변으로 제안되곤 했습니다. 사실 영국에서는 ‘미디어 교육’이라는 용어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는 1990년대 후반 영국 정치 무대에서 스크린 폭력의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으로서 영국에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일부(고 테사 조웰과 같은 정치인 포함)는 더 넓은 개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미디어 리터러시는 기능적 기술의 문제로 축소되었으며 인터넷 안전이라는 협소한 우려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축소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 최근에는 소위 ‘가짜 뉴스’라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미디어 리터러시(또는 정보 리터러시 또는 뉴스 리터러시)가 해답으로 제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 정부의 최신 정책애서는 우리는 이제 ‘온라인 안전’과 ‘잘못된 정보’라는 두 가지 문제를 모두 다루는 수단으로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 있는 링크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후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처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인용한 우려의 말들은 이러한 문제들이 처음에 어떻게 정의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리터러시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실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도를 바라보는 대 있어 상당한 회의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리터러시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자는 호소는 일반적으로 많은 ‘립 서비스’와 약간의 행동만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다양한 버전의 ‘리터러시'(미디어 리터러시, 뉴스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정보 리터러시 등)의 개념은 대부분 제한적이고 도구적인 것으로, 훨씬 더 크고 복잡한 문제들을 신속하게 개인주의적인 차원에서 개선하려는 솔루션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 가지 버전의 ‘리터러시’에 ‘데이터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추가되었습니다. ‘데이터 리터러시’는 ‘디지털 리터러시’나 앞서 언급한 다른 리터러시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중복되는 축면을 갖고 있습니다. 일부의 경우 이 용어는 본질적으로 데이터 형태의 정보에 접근하고, 해석하고, 전달하는 능력과 같이 상대적으로 기능적인 일련의 기술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데이터 리터러시를 현대적 삶의 데이터화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간주하는 더 중요한 개념 정의가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언뜻 데이터 리터러시는 대규모 기술(또는 미디어 또는 데이터) 회사의 도처에 있는 힘에 저항하는 수단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데이터화는 역사적으로 볼 때 디지털 기술의 도래보다 훨씬 앞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개인의 특성과 행동의 측면을 나타내기 위해 데이터를 사용하는 일이 증가한 것은 적어도 한 세기 전에 시작된 기록 보관 시스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훨씬 장기적인 발전 과정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데이텅화의 모든 시스템에는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적 가치와 가정이 주입됩니다. 데이터 사용의 증가는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유형 등의 인간상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삶의 도처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기술은 데이터화를 이전과는 다른 수준으로 이끌었습니다. 디지털 데이터의 생성 및 사용은 점점 더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구성하고 수행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데이터를 수집, 구성, 분석 및 사용하는 방법을 거의 제어하지 못합니다. 데이터화의 시스템이 일반인들에게는 불투명하고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데이터화에 대해 우리는 무관심하고 냉소주의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술과 상호 작용하는 것이 ‘데이터 포인트’의 집합이 되면서, 사실상 ‘개인 정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러한 상황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핬던 것은 아닙니다. 2019년에 Shoshana Zuboff와 같은 작가가 나타나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렸을 때 그녀는 대부분의 미디어 전공 학생들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현대 미디어/기술 회사의 전체 비즈니스 모델은 개인 데이터의 생성 및 판매를 전제로 합니다. 인터넷이 없으면 인터넷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일은 교육 자체가 특히나 수익성이 높은 시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데이터화는 더 이상 시험 점수를 수집하고 대조하는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학습 활동에 참여할 때 생성된 ‘추적 데이터’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다양한 형태의 인공 지능을 통해 학생들이 받는 가르침을 형성하는 데 사용됩니다. 여기에서 사회 생활의 다른 측면에서와 마찬가지로 데이터화는 이미 진행 중인 다른 문제 경향들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교육에서의 데이터화는 교수 및 학습을 단지 기계적 측정의 과정과 결과로 축소해 버리며, 공교육의 시장화와 상업화의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연 무엇을 배움으로, 그리고 지식으로 여기며, 교육의 근본 목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데이터화와 관련해 우리가 제기해야 할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중 특히 교육자 중 누구라도 이에 대해 뭔가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교육 현장에 적용될 수 있을까요? 저는 Luci Pangrazio와 Julian Sefton-Green이 편집한 새로운 책, Learning to Live with Datafication: Educational Case Studies and Initiatives from Across the World를 읽으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 나라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적 ‘이니셔티브’, 즉 교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솔직히 다소 실망스헙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편집된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도 매우 의미있는 챕터들과 그렇지 않은 챕터들이 다소 섞여 있습니다. 옐 들어, 데이터화와 교육에 대한 논쟁에 대해 매우 유용한 개요를 제시하는 챕터가 있습니다(Rebecca Eynon 저). 교육 정책과 기술 사용 간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 연구들(라틴 아메리카에서는 Cristobal Cobo와 Pablo Vargas, 네덜란드에서는 Niels Kerssens와 Mariette de Haan)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호주 학교의 ‘미시 정치’와 관련하여 데이터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Neil Selwyn et al)을 제시하는 챕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론이라는 ‘큰 망치’가 작은 견과류를 부수는 데 사용되는 둔탁한 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챕터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량은 많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아 보이는 학문적 에세이들도 일부 수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면, 그런 에세이적인 챕터들보다는 이 논문이나 이 논문과 같이 이 책의 편집자들이 저술한 짧은 논문들을 확인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학문적 사회학적 입장을 취합니다. 이 책의 챕터들 중에는 거의 불가지론적인 것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데이터화 현상을 설명, 분석 및 이론화하면서 세상 위에서 부유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또 많은 챕터들은 ‘비판적 교육학’이 지닌 다소 모호한 제스처를 보이면서 ‘데이터 리터러시’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이 실제로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수반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히고 있는 챕터는 두 챕터뿐입니다. 내가 이 책에서는 제시할 수 없었던 뭔가 다른 것을 찾으려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편집자들(서론과 결론에서)과 저 뿐 아니라 챕터를 저술한 일부 저자들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 특히 이 두 챕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벨기에의 Jeremy Grosman, Jerry Jacques, Anne-Sophie Collard는 YouTube 동영상의 ‘추천 시스템’과 그 안에 내재된 사회적 가치에 대해 가르치는 접근 방식을 설명합니다. 다음 장에서 정현선, 오연주, 김아미는 한국의 5, 6학년 학생들에게 사용하기 위해 벨기에 자료를 수정해 적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논의합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시뮬레이션’ 방법을 적용한 것으로, 학생들이 YouTube용 알고리즘을 설계한 다음 이를 적용하고 평가하는 위치에서 활동하도록 한 것입니다(대화 및 펜과 종이를 통해서!). 벨기에에서 사용된 교육 자료에 비해 한국의 자료가 훨씬 더 단순하지만(어린이 연령을 감안할 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연구는 기술 인프라의 상당히 불투명한 측면에 대한 교육이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 없이도 매우 능동적이고 경험적인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교실애서 수집된 학습의 근거들은 학생들이 다양한 유형의 데이터의 특성과 가치에 대해 매우 심도 있는 토론에 참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책의 일부 다른 저자들은 데이터화 사회의 새로운 미디어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같지만, 벨기에와 한국의 교육 사례에서 사용된 전략과 개념들이 미디어 교육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좋은 방법들을 새로운 미디어의 이해를 위해 적용하는 데 있어 완벽하게 의미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이터 리터러시’는 데이터 인프라와 ‘데이터 자본주의’의 광범위한 운영에 대한 새로운 기술적 이해를 수반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곳에서 주장했듯이 이를 위해 ‘바퀴를 재발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벨기에와 한국의 두 가지 수업 사례에서 초점을 둔 주요 개념은 ‘미디어 기관(이러한 플랫폼의 정치 경제)’이었지만, 이와 동시에 학생들은 ‘미디어 수옹자’ 또는 ‘이용자’로서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미디어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일상적인 미디어 실행이 더 넓은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맥락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해하도록 권장되는데, 이 두 수업도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교육학적으로 볼 때 이 수업들에서 이루어진 활동 자체는 1980년대에 뉴스, 대중 음악 및 영화 산업과 같은 ‘오래된’ 미디어의 측면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사용했던 ‘시뮬레이션’을 연상시킵니다. 이 수업 사례들은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 가능한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디어 교육은 데이터화로 인해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부분적인 해결책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교육과 규제 둘 다 필요합니다. 제가 이전에 주장했듯이 이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현실에서 대부분의 경우 규제 제안은 디지털 미디어와 관련된 가장 명백한 ‘피해’를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실제 피해의 증거를 확립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의 운동가들은 또한 어린 시절의 개념을 일종의 대리인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로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관심사를 동원하는 (멜로)드라마틱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인에 대한 데이터 규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경계하면서도, 어린이에 대한 데이터 규제에 대해서는 반대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데이터 규제와 관련한 입장에는 논쟁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핵심 질문은 결과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직접적인 정부 개입 형태는 매우 문제가 많습니다. 영국 의회에서 곧 논의될 온라인 안전 법안은 대기업이 저지르는 가장 노골적인 형태의 잘못된 행동과 범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주요 용어(예: ‘합법적이지만 유해한’ 범주)가 상당히 부적절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들의 자율 규제에만 의존하는 것도 똑같이 문제가 있습니다. 미디어/기술 대기업들은 공개적으로는 올바른 발언을 소리를 잘 준비해서 합니다. 그러나 기업 관게자들이 경계심을 덜 갖고 말하는 상황에서 발언한 것을 볼 때, 그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어떤 제약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반대합니다. 정부가 이들 기업이 세금을 내도록 할 수 없다면 의미 있는 형태의 콘텐츠 규제에 따르게 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물론 정책 입안자들은 기술 변화에 더디게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소비자나 사용자가 기술 참여에 있어 더 유능하고, 인지하고, 중요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 정책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더 어려운 일을 회피하기 위해, 또 다시 교육에 책임을 전가할 위험이 항상 존재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의 경우, 영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여겨지는데, 근본적인 위선은 정부 자체에 있습니다. 영국 정부에서는 디지털/인터넷/미디어 리터러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보고서가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영국의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미디어 교육을 꾸준히 제거하려 하고 있고,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전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었던 ‘미디어 연구’ 과목을 거의 고사시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보다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형태의 미디어 교육이 사리질 경우 ‘뉴스 리터러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데이터 리터러시를 제공하는 주요 제공자에게는 학생들에게 활동을 통해 데이터 리터러시를 기르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리터러시’라는 용어의 사용에 대해서는 이미 더 폭넓은 논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향후 게시물에서 다루겠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리터러시’를 통한 사회 문제 해결 방안들과 마찬가지로, 데이터 리터러시 또한 그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단지 기능적 기술이나 데이터 안전에 대한 일반적인 경고 차원으로 축소될 위험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한 접근 방식의 효과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적어도 원칙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데이터가 수집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대부분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무료’ 서비스에 대한 필수 절충안으로 보고 있으며, 어쨌든 이용 가능한 접근 가능한 대안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GDPR로 인해 쿠키 허용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쿠키를 수집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지 정확히 조사하고 있습니까? 정말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이에 대한 정보를 원하고 바로 지금 그것을 원합니다.

학교가 점점 더 상업 기업의 데이터 수집 방식에 문을 활짝 열고 있는 시기에 데이터 리터러시를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업은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에서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분석하는 흥미로운 데이터리터러시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회와 교육의 광범위한 데이터화를 다루고자 한다면 데이터 리터러시는 아이들에게 쿠키와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을 가르치거나 실제로 코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YouTube의 인플루언서, Twitter의 공개 토론, Facebook 또는 TikTok의 자기 표시 등을 생각할 때 젊은이들이 개인 정보 설정을 조정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고 성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교육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궁극적으로 데이터 문제를 다루는 교육은 알고리즘을 만드는 수학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 문화에 대한 교육으로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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