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넷 특강] “미디어 리터러시의 기초와 핵심: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실천을 어떻게 해야 할까?” (2022. 4. 5.)

[오픈넷 미디어 리터러시 월례 특강]
1강 – 미디어 리터러시의 기초와 핵심: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실천을 어떻게 해야 할까?
– 강사: 정현선 교수(경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 일시: 2022년 4월 5일
– 자료집 보기: https://opennet.or.kr/20790

“어린이, 키즈테크산업과 메타버스: 디지털 자본주의 속 글로벌 아동기(Kids, KidTech and the Metaverse: Global childhoods in digital capitalism) – new research project

캐나다 인문사회과학연구재단 SSHRC의 지원을 받는 국제협력연구 “어린이, 키즈테크산업과 메타버스: 디지털 자본주의 속 글로벌 아동기(Kids, KidTech and the Metaverse: Global childhoods in digital capitalism)”가 캐나다 요크대학교,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 호주 퀸즐랜드공과대학교와 한국의 경인교육대학교의 협력으로 향후 3년의 계획으로 시작됩니다.

이 연구는 SSHRC Partnership Development Grants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며, 연구책임자는 캐나다 요크대학교 Institute for Research in Digital Literacies의 Natalie Coulter 교수, 공동연구자는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의 Rebekah Willett 교수, 호주 퀸즐랜드공과대학교의 Michael Dezuanni 교수, 경인교육대학교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의 정현선 교수입니다.

링크: https://www.sshrc-crsh.gc.ca/results-resultats/recipients-recipiendaires/2021/pdg-sdp-eng.aspx?fbclid=IwAR2huXYGHSJ-u6sfyzs1C4_F5SXysCw4bXiVTVwlxC6H7NOYyGGpPsCbEKk&fs=e&s=cl

어린이 디지털 미디어 교육 분야의 창의작이고 비판적이며 혁신적인 연구를 이끌어온 여러 나라의 훌륭한 연구자들과 함께 의미있는 연구를 진행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아직 참여 대학 간 연구 협약 등의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만, 이제 공식 발표가 되어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의 현대 아동기와 미디어 문화 산업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증거 기반 미디어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이 연구에 많은 관심과 도움 부탁드립니다.

“궁금하지만 물어볼 데 없는 양육 노하우: 뱃속부터 디지털, 알파세대를 위한 스크린 사용법” (중앙일보*카톰, 2022)

카톰(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과 중앙일보가 함께 하는 디지털 페어런팅 연재 기사입니다. “부모 미디어 교육을 위한 소셜 리빙랩” 연구의 공동연구원이었던 김광희 선생님, 퍼실리테이터가 되어 주셨던 박유신 선생님이 핵심 사항들을 잘 안내해 주셨습니다.

1. 스크린 보는 데도 문해력이 필요하다고요?

2. 연령별 시청 가이드 : 24개월 이하

3. 연령별 시청 가이드 : 만 2~9세

4. 좋은 콘텐트, 어떻게 고르죠?

5. 알아두면 요긴한 꿀팁 3가지

6. 상황별 고민 Q&A

기사 바로가기: https://www.joongang.co.kr/atoz/15?fbclid=IwAR14YEeMQq_kW5b2L9jMQNvGsWOIXIADOA7Y6VvN3NhsETkNZWE3s9x3iws&fs=e&s=cl

“청소년 미디어 교육 지원을 위한 부모 참여 중심 소셜리빙랩 운영 방안”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1)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소년 미디어 이용 실태 및 대상별 정책대응방안 연구 2: 10대 청소년”(연구책임자: 배상률)의 협동 연구로 진행된 “청소년 미디어 교육 지원을 위한 부모 참여 중심 소셜리빙랩 운영 방안”(연구책임자: 정현선)의 보고서가 발간되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학교 미디어 교육 지원 플랫폼인 ‘미리네‘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보고서 다운로드 링크

이 연구는 부모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디어 이용에 대한 교육의 참여자로서의 실천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청소년의 미디어 이용에 대한 이해를 주도적으로 재구성하고 확장할 수 있는 부모 교육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아, 부모 참여형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는 ‘소셜 리빙랩’ 방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앞당겨진 디지털 전환 시대에 적합한 어린이와 청소년의 가정 내 미디어 이용 지도를 위해 부모들에게 일방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부모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과 사회 문화 속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의 연령층과 특성에 따라 자녀들의 미디어 이용에 대해 최신 연구 결과에 근거한 새로운 부모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체계적 문헌 연구와 국내외 전문가 자문 및 연구진 숙의를 바탕으로 한 소셜 리빙랩 연구의 설계와 실행 방법을 적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소셜 리빙랩은 1) 생활 환경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2) 정책 및 공공 서비스 제공과 관련한 문제 해결 및 의사결정 과정에서 3) 시민에 대한 권한 부여를 장려하고 연구자, 시민, 기타 지역사회 행위자와 공동으로 지식을 구축하는 지역사회 관여형 연구방법론입니다.

이 연구는 1) 부모 참여자 모집과 선정, 2) 부모 참여자 대상 설문 및 인터뷰 질문 항목의 설계, 3) 자녀의 미디어 중재자로서 부모의 이해 증진을 위한 소셜 리빙랩 프로그램의 운영, 4) 소셜 리빙랩 프로그램의 자료 수집과 분석 및 집필의 네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세한 연구의 내용과 결과 및 정책 제언은 보고서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호주 영어과 교육과정의 성취기준과 학습내용 (‘학습량 적정화’란 무엇인가?)

호주 영어 교육과정 3~6학년의 성취기준입니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수준이 참 높지 않나요?

참고로,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이렇게 진술하려고 하면 학습 수준이 너무 높아지니 더 쉽게 쓰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3학년 수준도 꽤 높지 않나요?

호주의 영어과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은 이렇게 ‘수용 양식(듣기, 읽기, 보기)’과 ‘생산 양식(말하기, 쓰기, 만들기)’으로 나누어 각 학년을 마칠 때마다 어떤 능력에 도달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통합적으로 간략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성취기준과 학습내용은 다릅니다!

호주의 경우 성취기준은 통합적으로 비교적 간략하게 제시되어 있지만, 학습 내용은 그 분량이 4배 정도에 달하며, 세부 내용에 따라 아주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아래에 캡쳐해서 제시한 것을 보시면 됩니다. 위의 두 페이지는 3~6학년의 성취기준, 뒤의 열 페이지는 학습내용입니다.

성취기준은 ‘수용 양식’과 ‘생산 양식’으로 구분해 간략하게 통합하여 진술하고 있지만, 학습내용은 매우 세세합니다.

학습 내용의 범주에는

– ‘언어 변이 및 변화'(문법에 해당)

–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언어'(듣기, 말하기에 해당)

– ‘평가적 언어'(비판적 리터러시에 해당-우리나라에는 이것이 별도로 없음)

– ‘다양한 유형의 텍스트 목적, 수용자, 구조'(텍스트 구조에 대한 비판적 리터러시에 해당-우리나라에는 이것이 별도로 없음)

– ‘텍스트 응집성'(리터러시에 해당-문법 및 읽기, 쓰기 관련)

– 구두점(문법에 해당)

– 인쇄 및 화면의 개념(미디어 리터러시에 해당)

– 문장과 절 수준의 문법, 단어 수준의 문법

– 시각적 언어(미디어 리터러시에 해당)

– 어휘

– 음성 인식과 음소 인식

– 알파벳 및 음성 지식

– 맞춤법

– 텍스트가 생성된 문화와 상황의 맥락을 그 텍스트가 어떻게 반영하는가(비판적 리터러시에 해당)

– 텍스트의 아이디어, 인물, 관점에 대한 개인의 반응

– 선호하는 텍스트에 대한 표현과 텍스트 평가(비판적 리터러시에 해당)

-문학 텍스트의 특징, 비유를 포함한 문학 텍스트의 언어적 장치들

– 문학 텍스트 창작

– 실험과 개작

– 텍스트의 사용 맥락(비판적 리터러시에 해당)

– 듣기 말하기의 상호작용 1(목적과 맥락)

– 듣기 말하기의 상호작용 2(기능)

– 구두 발표

– 목적과 수용자(비판적 리터러시)

– 읽기 과정

– 독해 전략

– 텍스트 분석과 평가(비판적 리터러시)

– 텍스트 만들기(미디어 리터러시)

– 편집

– 손글씨

– 소프트웨어 사용(디지털 리터러시)

이렇게나 많은 학습내용 범주에 따라 세세한 내용이 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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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호주 ACARA

물론 호주 교육과정이 최선은 아니겠죠.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는 ‘학습 내용’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과 교육학자들은 학습 내용을 세세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교과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어떤 내용을 넣고 어떤 내용을 뺄지, 어떤 내용을 더 자세히 다루고 어떤 내용은 더 간략히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과정 문서를 만드는 가이드라인에서는 ‘내용 체계’에서 간략하게 내용 요소만 제시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성취 기준’의 숫자도 더 줄여서 제시하게 합니다. 그것을 ‘학습량 적정화’라고 부릅니다. 학습 내용은 구체적인 문장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 (거의 단어 수준으로 제시합니다.) 어떤 기준에 도달해야 하는지는 문장으로 제시하되 간략하게 제시하게 합니다.

그러니 ‘성취기준’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학습 활동과 비슷한 진술들이 제시됩니다. 그렇게 간략하게 제시된 성취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는 너무나 간략하게 제시되는 것이 현재의 교육과정 문서 체제입니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더 쉽게 더 잘 이해하면서 배우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연구가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단어 수준에서 나열된 학습 내용과 짧은 문장으로 제시된 성취기준 사이의 간극을 학생과 교사는 어떻게 메워야 할까요? (아, 교과서 분량도 제한됩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어떻게 메우게 될까요?

아무리 전문가들이 학습 내용을 자세하게 진술해야 한다고 말해도 성취기준을 간략하게 진술하라는 가이드라인만 돌아옵니다. 학교에서도 공부할 내용을 너무 자세하게 진술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명시적 교육과정’은 줄어들겠지만, ‘암묵적 교육과정’이 늘어나게 됩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눈치껏 알아서 학생 스스로 (혹은 가정에서) 채워야 하는 학습’의 양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수학만_문제가_아닙니다.

#우리나라_국어과_교육과정을_쉽게_만들라고_하면서_문해력_수준_타령을_합니다.

#학생들은_죄가_없습니다.

#OECD에서도_한국_학생들의_디지털_문해력_수준이_낮은_이유는_학교에서_배울_기회가_없어서라고_분명히_지적했습니다.

#문해력_수준_낮아졌다고_타령하면서_쉬운_것만_가르치라고_하지_맙시다.

#어려운_것도_쉽게_가르치는_교수법이_중요합니다.

미디어가 ADHD 아동과 부모를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이해 필요

미디어가 ADHD를 지닌 어린이와 부모를 다루는 재현 방식에 대해 비판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 생각을 한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이미 학부와 대학원 수업에서는 예시로 다루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교사들이 자주 접하는 미디어 재현의 문제이고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언론 보도, 소셜 미디어와 댓글에서는 ADHD에 대한 무지와 끔찍한 혐오 발언들이 넘쳐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가 미디어에 의해 재현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면, adhd 아동과 부모에 대한 미디어 재현은 그 우선순위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이미 전문가들의 좋은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가 하는 ‘말’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대안적인 사회적 담론 생성 능력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팩트 체크나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찾기와 활용은 이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ADHD 아동과 부모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교사의 방법에 대한 몇 가지 미디어 자료들을 소개합니다. 정독해 주시고, 주변에 널리 공유 부탁드립니다.

언론인들과 미디어 종사자들께서는 미디어가 ADHD를 다루는 방식, 자폐를 다루는 방식 등 정신 건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주의 깊게 관심을 갖고 전문가들의 최신 연구 결과와 견해를 바탕으로 바로 잡는 기사를 꾸준히 의제로 설정하고 유지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정신의학신문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미디어팀

“교사를 위한 ADHD 이야기” 1~10 ADHD의 역사 (1)

다른 나라의 ADHD (2)

다른 나라의 ADHD (3)

스모킹 건을 찾아서 (4)

ADHD 숨기는 부모 (5)

학생과 부모의 경험 (6)

학습에 미치는 영향 (7)

교실에서 살아남기 (8)

공부알약? ADHD 약물 바로 알기 (9)

ADHD의 자연치유: 에코 힙스터인가? 호갱인가? (10)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 이야기: 교실에서 ADHD 아동 도와주기

교육부 <행복한 교육>: 교실마다 ADHD… 학교 부적응 실태와 원인

[카드뉴스] 서울시교육청 ‘산만하고 부주의한 ADHD 학생 이렇게 도와주세요’:

팬데믹은 ‘스크린 이용 시간’의 종말을 가져왔을까?: 팬데믹 이후 가족의 미디어 이용에 대해 부모와 보호자들이 바라는 것 (Has the pandemic called time on ‘screentime’? Parents’ and caregivers’ hopes for post-pandemic family media practices)

2022.4.28.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2021년 봄에 시작된 7개국 국제 협력 연구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어린이, 미디어 및 자녀 양육에 관한 연구” (https://www.digitalchild.org.au/project/pandemic-parenting/)의 데이터 일부를 요약한 블로그 글이 지난 2022년 4월 28일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글은 호주, 한국, 영국 및 미국에서 수집된 만4세에서 12세 어린이의 부모 및 보호자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연구의 일부를 소개한 것으로, 캐나다, 중국, 콜롬비아 등 3개국의 데이터가 포함된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인터뷰에는 각 국가에서 20-24명 정도의 부모가 참여했습니다. 이 연구는 호주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디지털 어린이 연구소'(https://www.digitalchild.org.au/)의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고, 저는 이 연구소의 협력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페어런팅에 관한 의미 있는 연구에 참여할 수 있어 연구자로서 기쁘게 생각하며, 아직 전체 데이터의 분석은 진행 중이지만 초기 분석의 일부가 발표된 블로그의 글을 번역해 원문과 함께 공유합니다.

[원문] Has the pandemic called time on ‘screentime’? Parents’ and caregivers’ hopes for post-pandemic family media practices

Rebecca Coles (디킨대학교), Sarah Heally (디킨대학교), Hyeon-Seon Jeong (경인교육대학교), Amie Kim (경인교육대학교), Ju Lim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 & Rebekah Willett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

팬데믹으로 인해 어린이들이 오랫동안 가정에서 격리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스크린 미디어 이용이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이제 부모들은 이러한 상황을 돌아보며 자신들의 경험을 정리하고 팬데믹 이후 가족의 미디어 이용에 대한 비전을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부모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자녀의 어떤 디지털 기술 사용을 진심으로 ‘환영’할 수 있을지, 혹은 적어도 ‘허용’이라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디지털이 매개하는 세상과의 상호 작용을 위해 어떻게 자녀를 준비시켜야 할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미디어를 더 통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여러 나라들의 학자들이 함께 진행 중인 국제 병렬 연구를 통해, 팬데믹 기간의 학교 교육 유형이 무엇이었는가(온라인 교육, 대면 교육 및 홈스쿨링 등), 자녀의 온라인 학교 교육 및 기타 활동을 감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여부, 가족 구성 방식의 특징(자녀의 연령 및 수, 한부모 여부, 조부모의 조력 제공 여부) 등이 팬데믹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가정 내 미디어 이용과 매우 높은 관련성을 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학교 교육을 위해 컴퓨터나 태블릿을 자녀에게 제공했던 부모는 이제 이러한 기기들을 학교에 반환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모들은 학교에서 테크놀로지를 제공해 어린이들이 이것을 소유하면서 작동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에 자신이 부모로서 자녀의 디지털 기술 이용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녀들의 일상생활과 스크린 미디어의 의도적 사용에 대해 앞으로는 부모가 더 많이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학교 생활, 사교 활동, 오락 등 모든 것이 화면으로 진행됨으로 인해 화면을 켜고 보내는 시간과 끄고 보내는 시간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부모들은 하루 중 일부의 시간이라도 아이들이 화면을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온라인으로 접속해야 했기 때문에 가족의 일상생활의 일부로 미디어를 함께 이용하거나 혹은 미디어 이용을 중단시키는 등 부모로서 자녀의 미디어 이용 시간에 관한 규칙을 적용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들은 미디어 이용 시간을 두고 자녀들과 고군분투하며 말다툼을 벌였다고 말하면서, 외출하기, 학교에 가기,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스크린 미디어를 이용하지 않기 등을 실천하는 일상생활을 위해서는 자녀의 미디어 이용 시간에 대해 부모가 더 통제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스크린 미디어 이용과 비이용 시간 간의 균형이 더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교육이 대면 교육으로 돌아가면서 부모들은 학교가 디지털 기술을 보다 더 신중하게 사용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학교 생활을 하면서 자녀들이 가족과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들을 집으로 가져올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고, 일부 부모들은 학교가 예전의 종이 기반 미디어 사용 상황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기도 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될 수 없을까요? “저희 아이는 아이패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기뻐할 겁니다. 만약 그보다 더 나은 할 일이 있다면 말이죠.”

많은 부모들은 이제 단순히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감정도 표현했습니다. 스크린 미디어와 디지털 기술 사용을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그 사이에 상당히 자랐고, 핀데믹이 없었더라도 지금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스크린 미디어를 더 많이 이용하게 되었을 것이고, 이미 어린이들이 테크놀로지를 끊임없이 이용하는 것에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이후의 바램에 관해 물었을 때, 부모들은 자녀들이 오락과 학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찾게 되는’ 도구로 스크린 미디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좀더 의도와 목적을 갖고 사용하게 되기를 바라고 스스로를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어린이들의 스크린 미디어 사용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스크린 미디어 이용 시간에 관한 규칙을 좀더 유연하게 적용해서 이전과는 달리 스크린 미디어 기술 이용으로 인한 혜택을 좀더 인정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팬데믹 기간동안 아이들이 발달시켜온 스크린 미디어 이용의 어떤 측면들은 지속하도록 하겠다는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좀더 생산적인’ 활동, 다양한 유형의 학습, 그리고 친구나 친척과 줌으로 만나는 것과 같이 더 이상 ‘미디어 이용 시간’으로 간주하지 않게 된 관계맺기 목적을 위한 미디어 이용 등은 자녀들이 지속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팬데믹 이후의 스크린 미디어 이용 시간으로 전환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순조로웠다고 말한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모들은 자녀들이 스포츠 활동이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학습 활동 등으로 바쁜 스케쥴을 보내고 있고, 스크린 미디어 이용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고 있으며. 스크린 미디어 이용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그러지 말아야 할까요? “실제 삶에서 온라인 미디어 이용을 지원할 수 있다면, 온라인과 실제 삶을 혼합하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가장 좋을 거예요.”

우리가 인터뷰를 통해 만난 부모들은 스크린 미디어 이용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들을 갖고 있었고,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연구자로서 우리는 만약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과연 그렇게 해야 할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학교 교육과 이로 인해 생겨난 밀도 높은 디지털 기술 사용을 경험한 어린이들은 팬데믹과 더불어 2년 이상 성장했기 때문에, 스크린 미디어 이용과 디지털 기술의 사용에 대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접근 방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어린이들의 디지털 기술 이용에 대해 시간을 기준으로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스크린 이용 시간(screentime)’이라는 용어는 어린이들의 일상생활에 관여하고 있는 디지털 상호작용의 범위와 다양성이 그 어느때보다 증가한 점을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부모가 용납하지 않는 자녀의 디지털 기술 실행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그리고 높은 수준의 미디어 이용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스크린 이용 시간’이라는 용어를 어른들의 관점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매개된 어린이들의 삶을 오로지 ‘시간’만을 기준으로 규제해 온 그간의 일반적인 관행이 이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에 대해:

이 글은 호주, 한국, 영국 및 미국에서 수집된 만4세에서 12세 어린이의 부모 및 보호자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의 어린이, 미디어 및 자녀 양육에 관한 연구”의 데이터 일부를 요약한 것입니다. 여기에 제시된 데이터는 캐나다, 중국, 콜롬비아 등 3개국의 데이터가 포함된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로, 각 국가에서 20-24명의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데이터 리터러시는 누구에게 필요할까요? (Who Needs Data Literacy?)” (David Buckingham, 2022.4.21.)

* 아래 글은 미디어 교육학자 David Buckingham 교수의 블로그에 게재된 Learning to Live with Datafication: Educational Case Studies and Initiatives Across the World (edited by Luci Pangrazio & Julian Sefton-Green, Routledge, 2022)(아래 표지)에 대한 서평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버킹엄 교수의 글은 데이터화 사회의 문제에 대해 국가의 규제와 미디어 교육이 모두 필요함을 강조하며, 서평 대상인 책에서 다룬 주요 쟁점과 그 의미 및 후속 과제를 짚고 있습니다. 데이터화 사회에 대한 비판적 미디어 교육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Lnk: https://www.routledge.com/Learning-to-Live-with-Datafication-Educational-Case-Studies-and-Initiatives/Pangrazio-Sefton-Green/p/book/9780367683078

‘데이터 리터러시’는 현대 생활의 데이터화, 특히 교육 자체에 대한 유용한 대응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데이터화에 대한 개념 정의 방법뿐 아니라 실제로 구현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리터러시’에는 많은 버전들이 있는데, 이는 종종 사회 정책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답변으로 제안되곤 했습니다. 사실 영국에서는 ‘미디어 교육’이라는 용어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는 1990년대 후반 영국 정치 무대에서 스크린 폭력의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으로서 영국에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일부(고 테사 조웰과 같은 정치인 포함)는 더 넓은 개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미디어 리터러시는 기능적 기술의 문제로 축소되었으며 인터넷 안전이라는 협소한 우려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축소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더 최근에는 소위 ‘가짜 뉴스’라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미디어 리터러시(또는 정보 리터러시 또는 뉴스 리터러시)가 해답으로 제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 정부의 최신 정책애서는 우리는 이제 ‘온라인 안전’과 ‘잘못된 정보’라는 두 가지 문제를 모두 다루는 수단으로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 있는 링크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후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처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인용한 우려의 말들은 이러한 문제들이 처음에 어떻게 정의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리터러시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실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도를 바라보는 대 있어 상당한 회의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리터러시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자는 호소는 일반적으로 많은 ‘립 서비스’와 약간의 행동만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다양한 버전의 ‘리터러시'(미디어 리터러시, 뉴스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정보 리터러시 등)의 개념은 대부분 제한적이고 도구적인 것으로, 훨씬 더 크고 복잡한 문제들을 신속하게 개인주의적인 차원에서 개선하려는 솔루션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 가지 버전의 ‘리터러시’에 ‘데이터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추가되었습니다. ‘데이터 리터러시’는 ‘디지털 리터러시’나 앞서 언급한 다른 리터러시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중복되는 축면을 갖고 있습니다. 일부의 경우 이 용어는 본질적으로 데이터 형태의 정보에 접근하고, 해석하고, 전달하는 능력과 같이 상대적으로 기능적인 일련의 기술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데이터 리터러시를 현대적 삶의 데이터화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간주하는 더 중요한 개념 정의가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언뜻 데이터 리터러시는 대규모 기술(또는 미디어 또는 데이터) 회사의 도처에 있는 힘에 저항하는 수단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데이터화는 역사적으로 볼 때 디지털 기술의 도래보다 훨씬 앞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개인의 특성과 행동의 측면을 나타내기 위해 데이터를 사용하는 일이 증가한 것은 적어도 한 세기 전에 시작된 기록 보관 시스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훨씬 장기적인 발전 과정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데이텅화의 모든 시스템에는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적 가치와 가정이 주입됩니다. 데이터 사용의 증가는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유형 등의 인간상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삶의 도처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기술은 데이터화를 이전과는 다른 수준으로 이끌었습니다. 디지털 데이터의 생성 및 사용은 점점 더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구성하고 수행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은 데이터를 수집, 구성, 분석 및 사용하는 방법을 거의 제어하지 못합니다. 데이터화의 시스템이 일반인들에게는 불투명하고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데이터화에 대해 우리는 무관심하고 냉소주의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술과 상호 작용하는 것이 ‘데이터 포인트’의 집합이 되면서, 사실상 ‘개인 정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러한 상황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핬던 것은 아닙니다. 2019년에 Shoshana Zuboff와 같은 작가가 나타나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렸을 때 그녀는 대부분의 미디어 전공 학생들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현대 미디어/기술 회사의 전체 비즈니스 모델은 개인 데이터의 생성 및 판매를 전제로 합니다. 인터넷이 없으면 인터넷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일은 교육 자체가 특히나 수익성이 높은 시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데이터화는 더 이상 시험 점수를 수집하고 대조하는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학습 활동에 참여할 때 생성된 ‘추적 데이터’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다양한 형태의 인공 지능을 통해 학생들이 받는 가르침을 형성하는 데 사용됩니다. 여기에서 사회 생활의 다른 측면에서와 마찬가지로 데이터화는 이미 진행 중인 다른 문제 경향들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교육에서의 데이터화는 교수 및 학습을 단지 기계적 측정의 과정과 결과로 축소해 버리며, 공교육의 시장화와 상업화의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연 무엇을 배움으로, 그리고 지식으로 여기며, 교육의 근본 목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데이터화와 관련해 우리가 제기해야 할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중 특히 교육자 중 누구라도 이에 대해 뭔가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교육 현장에 적용될 수 있을까요? 저는 Luci Pangrazio와 Julian Sefton-Green이 편집한 새로운 책, Learning to Live with Datafication: Educational Case Studies and Initiatives from Across the World를 읽으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 나라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적 ‘이니셔티브’, 즉 교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솔직히 다소 실망스헙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편집된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도 매우 의미있는 챕터들과 그렇지 않은 챕터들이 다소 섞여 있습니다. 옐 들어, 데이터화와 교육에 대한 논쟁에 대해 매우 유용한 개요를 제시하는 챕터가 있습니다(Rebecca Eynon 저). 교육 정책과 기술 사용 간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 연구들(라틴 아메리카에서는 Cristobal Cobo와 Pablo Vargas, 네덜란드에서는 Niels Kerssens와 Mariette de Haan)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호주 학교의 ‘미시 정치’와 관련하여 데이터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Neil Selwyn et al)을 제시하는 챕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론이라는 ‘큰 망치’가 작은 견과류를 부수는 데 사용되는 둔탁한 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챕터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량은 많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아 보이는 학문적 에세이들도 일부 수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면, 그런 에세이적인 챕터들보다는 이 논문이나 이 논문과 같이 이 책의 편집자들이 저술한 짧은 논문들을 확인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학문적 사회학적 입장을 취합니다. 이 책의 챕터들 중에는 거의 불가지론적인 것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데이터화 현상을 설명, 분석 및 이론화하면서 세상 위에서 부유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또 많은 챕터들은 ‘비판적 교육학’이 지닌 다소 모호한 제스처를 보이면서 ‘데이터 리터러시’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이 실제로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수반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히고 있는 챕터는 두 챕터뿐입니다. 내가 이 책에서는 제시할 수 없었던 뭔가 다른 것을 찾으려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편집자들(서론과 결론에서)과 저 뿐 아니라 챕터를 저술한 일부 저자들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 특히 이 두 챕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벨기에의 Jeremy Grosman, Jerry Jacques, Anne-Sophie Collard는 YouTube 동영상의 ‘추천 시스템’과 그 안에 내재된 사회적 가치에 대해 가르치는 접근 방식을 설명합니다. 다음 장에서 정현선, 오연주, 김아미는 한국의 5, 6학년 학생들에게 사용하기 위해 벨기에 자료를 수정해 적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논의합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시뮬레이션’ 방법을 적용한 것으로, 학생들이 YouTube용 알고리즘을 설계한 다음 이를 적용하고 평가하는 위치에서 활동하도록 한 것입니다(대화 및 펜과 종이를 통해서!). 벨기에에서 사용된 교육 자료에 비해 한국의 자료가 훨씬 더 단순하지만(어린이 연령을 감안할 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연구는 기술 인프라의 상당히 불투명한 측면에 대한 교육이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 없이도 매우 능동적이고 경험적인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교실애서 수집된 학습의 근거들은 학생들이 다양한 유형의 데이터의 특성과 가치에 대해 매우 심도 있는 토론에 참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책의 일부 다른 저자들은 데이터화 사회의 새로운 미디어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같지만, 벨기에와 한국의 교육 사례에서 사용된 전략과 개념들이 미디어 교육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좋은 방법들을 새로운 미디어의 이해를 위해 적용하는 데 있어 완벽하게 의미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이터 리터러시’는 데이터 인프라와 ‘데이터 자본주의’의 광범위한 운영에 대한 새로운 기술적 이해를 수반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곳에서 주장했듯이 이를 위해 ‘바퀴를 재발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벨기에와 한국의 두 가지 수업 사례에서 초점을 둔 주요 개념은 ‘미디어 기관(이러한 플랫폼의 정치 경제)’이었지만, 이와 동시에 학생들은 ‘미디어 수옹자’ 또는 ‘이용자’로서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미디어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일상적인 미디어 실행이 더 넓은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맥락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해하도록 권장되는데, 이 두 수업도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교육학적으로 볼 때 이 수업들에서 이루어진 활동 자체는 1980년대에 뉴스, 대중 음악 및 영화 산업과 같은 ‘오래된’ 미디어의 측면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사용했던 ‘시뮬레이션’을 연상시킵니다. 이 수업 사례들은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 가능한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디어 교육은 데이터화로 인해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부분적인 해결책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교육과 규제 둘 다 필요합니다. 제가 이전에 주장했듯이 이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현실에서 대부분의 경우 규제 제안은 디지털 미디어와 관련된 가장 명백한 ‘피해’를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실제 피해의 증거를 확립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의 운동가들은 또한 어린 시절의 개념을 일종의 대리인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로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관심사를 동원하는 (멜로)드라마틱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성인에 대한 데이터 규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경계하면서도, 어린이에 대한 데이터 규제에 대해서는 반대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데이터 규제와 관련한 입장에는 논쟁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핵심 질문은 결과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직접적인 정부 개입 형태는 매우 문제가 많습니다. 영국 의회에서 곧 논의될 온라인 안전 법안은 대기업이 저지르는 가장 노골적인 형태의 잘못된 행동과 범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주요 용어(예: ‘합법적이지만 유해한’ 범주)가 상당히 부적절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들의 자율 규제에만 의존하는 것도 똑같이 문제가 있습니다. 미디어/기술 대기업들은 공개적으로는 올바른 발언을 소리를 잘 준비해서 합니다. 그러나 기업 관게자들이 경계심을 덜 갖고 말하는 상황에서 발언한 것을 볼 때, 그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어떤 제약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반대합니다. 정부가 이들 기업이 세금을 내도록 할 수 없다면 의미 있는 형태의 콘텐츠 규제에 따르게 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물론 정책 입안자들은 기술 변화에 더디게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소비자나 사용자가 기술 참여에 있어 더 유능하고, 인지하고, 중요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 정책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더 어려운 일을 회피하기 위해, 또 다시 교육에 책임을 전가할 위험이 항상 존재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의 경우, 영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여겨지는데, 근본적인 위선은 정부 자체에 있습니다. 영국 정부에서는 디지털/인터넷/미디어 리터러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보고서가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영국의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미디어 교육을 꾸준히 제거하려 하고 있고,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전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었던 ‘미디어 연구’ 과목을 거의 고사시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보다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형태의 미디어 교육이 사리질 경우 ‘뉴스 리터러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데이터 리터러시를 제공하는 주요 제공자에게는 학생들에게 활동을 통해 데이터 리터러시를 기르는 일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리터러시’라는 용어의 사용에 대해서는 이미 더 폭넓은 논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향후 게시물에서 다루겠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리터러시’를 통한 사회 문제 해결 방안들과 마찬가지로, 데이터 리터러시 또한 그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단지 기능적 기술이나 데이터 안전에 대한 일반적인 경고 차원으로 축소될 위험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한 접근 방식의 효과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적어도 원칙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데이터가 수집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대부분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무료’ 서비스에 대한 필수 절충안으로 보고 있으며, 어쨌든 이용 가능한 접근 가능한 대안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GDPR로 인해 쿠키 허용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쿠키를 수집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지 정확히 조사하고 있습니까? 정말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이에 대한 정보를 원하고 바로 지금 그것을 원합니다.

학교가 점점 더 상업 기업의 데이터 수집 방식에 문을 활짝 열고 있는 시기에 데이터 리터러시를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업은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에서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분석하는 흥미로운 데이터리터러시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회와 교육의 광범위한 데이터화를 다루고자 한다면 데이터 리터러시는 아이들에게 쿠키와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을 가르치거나 실제로 코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YouTube의 인플루언서, Twitter의 공개 토론, Facebook 또는 TikTok의 자기 표시 등을 생각할 때 젊은이들이 개인 정보 설정을 조정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고 성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교육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궁극적으로 데이터 문제를 다루는 교육은 알고리즘을 만드는 수학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 문화에 대한 교육으로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