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초등학교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기세는 무서울 정도로 거셌고 이론적 근거는 빈약하고 당황스러웠다. 아무런 실증적 연구의 근거 없이 밀어붙이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상당한 사회적 동요와 반대가 있었다.
당시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전문가 의견을 구하는 전화를 돌리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전화를 받고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설명과 항변을 했다. 어린이들이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사회적 기술을 배우고 언어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할 중요한 시기에, 모든 수업을 로그인 로그아웃하는 수업, 타자 기술을 가르치는 수업으로 만들 셈이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자 전화를 건 담당자는 교육학술정보원에서 실시한 초등학교 교사 몇 분의 fgi 결과가 있는데 해석이 난감하다며 이에 대한 의견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자료는 표본 추출 등 기본적인 요건도 갖추지 못한 문제가 있는 자료였지만, 다행히 교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었다. 그 자료에 담긴 선생님들의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에 논리를 부여하고 연구의 근거를 들이대며, 백번 양보해도 국어과의 경우는 적어도 아이들이 초등 5-6학년은 되어야 의미 있는 디지털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강하게 말했다. 국어과는 리터러시를 다루는 교과이고, 디지털 리터러시에 못지 않게 문자와 인쇄물을 통해 사고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것을 뿌리째 흔들고 망치는 교육을 하면 그 결과를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담당자를 다그쳤다. 종이 교과서를 아예 없애겠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정부가 펼치던 시기여서 강하게 맞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의견이 받아들여져, (물론 내 의견만 반영된 것은 아니겠지만!) 국어과는 디지털 교과서 3-4학년 실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중요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질 때 전문가들이 소신을 갖고 연구의 근거를 갖고 정책 담당자를 설득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시기에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에듀테크 기술이 학생들의 탐구학습과 디지털 리터러시 발달에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일은 의미있고 중요하다. 나도 대학 수업에 구글 클래스룸 기술을 도입하면서, 다양하고 생생한 연구 자료와 동영상을 제시하고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며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술을 모두에게 즉각적으로 ‘전면 도입’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가르치는 사람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교육 목표에 따라 기술을 도입하기도, 끊기도 하는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아와 어린이들이 디지털 정보와 기술을 의미있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데에는 매우 섬세한 멘토링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전문가들이 학제적으로,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연구를 통해, 또한 시민사회 및 산업과의 협력을 통해 풀어가야 할 때이다. 산업의 논리에 교육을 맡겨서는 안 된다.
이원태 박사님의 노고에 또 다시 감사하며 아래 글을 링크한다.
[이원태 박사님 페이스북 글]
에듀테크(edu-tech) 옹호론자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저학년 학생들의 학교 수업에서는 아이패드 등의 디지털 교육 수단이나 이른바 개인의 특성/능력별 맞춤교육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학습효과에 도움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평소 기본적인 문해력(읽기능력 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저소득층의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디지털 교육수단이 학생들을 아이패드와 모니터 앞에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해 오히려 디지털 교육격차를 심화시킨다는 미국 교육전문가의 기고문.
- OECD 36개 회원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컴퓨터를 많이 사용할수록 학습결과가 더 나빠졌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디지털 교육수단은 유능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의 기술격차를 해소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 태블릿을 사용한 4학년 학생의 평균 점수가 태블릿 미사용 학생들의 평균 점수보다 14점이나 낮았다.
- 볼티모어 카운티의 한 학교는 컴퓨터 모니터에 의존한 교육방법에 회의적인 나머지 컴퓨터 이용률을 1/5로 오히려 줄여버렸다.
- 아이패드 등의 디지털 수단은 종이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적은 정보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며 디지털 장치의 다른 복잡한 기능으로 인해 산만함을 주는 역효과가 있었다.
- 디지털 기술은 교사와의 사회적 맥락(상호작용)에서 얻는 지식의 사회적 유용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개인화된 맞춤 교육은 학생들을 각자 모니터 앞에 앉아 있게 방치하는 것에 불과하며, 토론을 통한 공동학습도 어렵게 만들어 사회적 학습의 가능성마저 약화시킨다.
- 디지털 기술을 통한 학습은 “연습- 암기-자동화 지원”이라는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 저학년 학생들의 경우 기술 보다는 배경 지식과 어휘의 양, 즉 이해력이 더 중요했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디지털 교육을 바로 시킬 것이 아니라 사전의 문해력, 풍부한 지식 교육 과정이 더 중요했다.
- 콜로라도 대학의 국립교육정책센터(National Education Policy Center)의 2019 년 보고서에 의하면, ‘에듀테크’와 동일시되는 이른바 ‘개인화된 학습’은 “특정한 영향력있는 교육용 소프트웨어에 포함된 잘못된 교육관, 에듀테크산업의 이익구조, 학생들의 개인정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 연구지원 부족”의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How classroom technology is holding students back
